어린이날은 어제로 끝났지만, 5월 6일 금요일인 오늘은 또 다른 어린이날이나 마찬가지였다. 학교 재량휴일로 인해 아이에게 하루 더 휴일이 생긴 것이다.
그런 휴일을 두고도, 아이는 별다른 기대를 보이지는 않았다. 그저 학교를 하루 안 간다는 사실만으로도 기뻐했다. 그러나 나는 그냥 비어버린 아이의 시간을 맘 편히 맞이할 줄 모르는 엄마였다. 오늘도 너를 어제만큼 행복하게 해 주리라.
초등 아이에게는 이제 친구만큼 좋은 선물이 없다. 그 좋아하던 장난감도, 키즈 카페도 체험 놀이도 '친구와 함께하는 강아지 산책'이라는 코스를 이기지 못했다. 아이에게 엄마와 함께하는 여러가지 재미난 코스를 제안해 봤지만 아이는 친구와 함께할 수 있는 방법을 더 원했다.
그래서 친구와 시간을 맞추다 보니, 마침 친구는 강아지 산책을 시키길 원했고 아이도 여기에 참여하기로 했다. 아이는 친구와 함께 놀 수 있는데다가, 친구네 개도 함께 한다는 사실에 매우 들떠있었다.
그렇게 개와 함께 걷는 아이 뒤를 쫓게 됐다. 개의 시간도 지켜봤다. 자연에서 편하게 배변 활동도 하고, 영역 표시도 하고, 풀 냄새도 마음껏 맡았다. 개는 행복했다. 그렇게 살면 잘 사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지인은 매일 같이 강아지 산책에 진심이다. 그 강아지는 타고난 대로 살도록 존중받고 있었다.
나는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개도 이렇게 타고난대로 살게 하려고 노력하는데 왜 사람은 그렇게 못살까.
사람만 유독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어떤 룰이 있는 것 같다. 그 룰을 지켜야 하는 이유는 '실패'를 피하거나 '성공'이라고 생각하는 목적지에 닿기 위해서다. 나도 예외는 아니다. 내 앞에는 아버지가 짜 놓은 성공의 고속도로가 늘 펼쳐져 있었다. 나는 이때까지 그 도로를 타야만 했다.
그 고속도로는 처음에는 학교 공부였고, 수능 직후에는 취업이 잘 된다고 소문난 전공 과목이었고, 졸업 후에는 취업이었고, 취업 후에는 결혼이었고, 결혼 후에는 출산이었고, 출산 후에는 번듯한 집이었다. 빨리 달리지 못하면 뒤처진다는 것을 알기에, 그렇지 못할 때는 늘 초조했다. 이제는 다 커서 샛길로 새는 일은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다.
그래도 사춘기 때는 공부 외의 다른 것을 꿈꿔 본 적이 있다. 중학생 때 어도비 포토샵으로 평범한 사진을 멋지게 바꾸는 데 푹 빠진 적이 있다. 나중에 고등학생이 되어서는 그런 창작 욕구가 플로리스트, 주얼리 디자인 쪽으로 이어졌다.
특히 주얼리 쪽은 포토샵이 아닌 다른 3D모델링이 필요한 프로그램을 익혀야 했는데, 포토샵처럼 대중적인 프로그램이 아니던 탓에 학원 수강이 필요했다. 플로리스트도 정해진 커리큘럼이 있었기에 그런 학원에 등록할 필요가 있었다.
아버지에게 그런 분야에 대해 이야기 할 때마다 차가운 반응이 돌아왔다.
"플로리스트? 그거 구멍가게 같은 꽃집에서 꽃꽂이들이나 하는 거 아니냐? 보석 디자인? 그거 배워서 어따 써? 취업할 데나 있냐? 금은방 같은 데서 일하게? 그런 건 공부 다 하고 나서 나중에 취미로 해도 늦지 않는다"
고등학생인 딸이 공부 이야기는 안하고 딴소리니, 아버지 입장도 이해는 된다.
아버지는 에어컨이 빵빵하게 나오고 사람들이 정장을 입고 모여 일하는 곳에 내가 있기를 바랐다. 아버지 말을 듣다보면 내가 원하는 직업은 할거 다 해 봐도 실패한 사람들이나 하는 일처럼 들렸다. 더 조르고 싶었지만, 아버지 말을 듣지 않고 딴 길로 샜다가 나중에 들을 원망이 두려워서 더는 이야기하지 못했다.
그 꿈은 포기했지만 나는 역시나 나답게 이내 다른 데로 빠졌다. 글쓰기였다. 책 읽고 글 쓰는 데는 학원비처럼 많은 돈이 들지 않았다. 아버지 허락을 받을 필요도 없었다. 공부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한 편의 글도 내겐 '만들기'였다. 나는 그냥 뭐가 됐든지 간에 창작 행위에서 행복을 느꼈던 것이다.
겉으로는 아버지 말을 잘 듣고 살았다. 그 대가로 나는 경영학부를 졸업한 흔해빠진 인문대 졸업생이 되어있었다. 아버지는 경영학을 전공하면 어느 기업이든 환영해줄 거라고 했다. 그러나 경영학도로서의 나를 환영해주는 기업은 없었다. 극심해진 취업난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히려 나를 환영해준 곳은 작은 신문사였다. 신문방송학을 전공하지도 않았지만, 그동안 남몰래 써왔던 글들을 인정받아서 운 좋게 신문기자로 일하게 된 것이었다. 사실 나는 수능을 치르고 국어국문학과로 진학하길 희망했는데 그 사실은 가족 중에 아무도 모른다. 하늘처럼 높아만 보이던 상무님이 내 기획 기사를 인정해주던 날, 나는 경영학을 전공으로 선택한 것을 후회했다. 국문학을 전공했다면 어쩌면 지금보다 더 많은 기회가 있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서였다.
직업을 결정하는 이런 굵직한 선택뿐만 아니라 내게는 이런식으로 후회되는 작은 사건들이 많다. 기자로 일할 때에도 아버지는 내 직업을 못마땅해하셨고 그럴 바엔 차라리 공무원이 되라고 하셨다. 나는 애써 무시했다.
내가 출산으로 인해 직업을 포기하자 아버지는 더더욱 내가 공무원이 되길 바랐다. 매일 같이 전화해서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라고 했고, 친정 엄마까지 가세하여 애는 내가 다 봐줄 테니 공무원 공부해보는 게 어떻냐는 압박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내가 듣지 않자, 남편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남편의 직업이 맘에 들지 않고 그 월급은 너희가 살기엔 부족하다고 했다. 이래서야 나중에 애 태권도 학원이나 보내줄 수 있겠냐는 말은 남편에게도 내게도 꽤 상처가 됐다.
나는 그저 남편이 고생하며 일해서 벌어오는 월급이 귀했다. 고마웠다. 불평할줄 몰랐고 그에 맞춰 살기 위해 노력할 뿐이었다. 그렇게 살면서 조금이나마 저축해가며 돈이며 살림이며 불려 나가는 것에 보람을 느꼈다. 내가 느끼는 행복은 아버지 시선에서는 행복이 아니었다. 내가 공무원이 되어야만 행복할 수 있는 것이었다.
아버지와 함께하는 이상, 더이상 상처받지 않는 길은 내가 그냥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방법 밖엔 없었다. 내가 시험을 준비하기 시작하자 그 비난은 조금 사그라들었다. 흡족해하셨다. 나는 어린 아들을 두고 스물여덟에 공무원 공부를 시작했고 서른 초반까지 공무원 준비에 시간을 썼다. 나답지 않은 일은 역시 결실을 맺기 어렵다. 나를 향한 공무원에 대한 아버지의 염원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그리고 서른 중반이 되었다. 나는 전업주부가 된 이후에도 그놈의 '공부해야 한다'는 압박으로 인해 취득한 자격증들이 꽤 있다. 대표적인게 한국사 능력시험 1급, KBS 한국어 능력시험 2+급이다. 그밖에 영어, 컴퓨터 관련 자격증 등 징글징글하다.
나는 얼마전 CT를 찍었다. 뭔가 보이는 게 이렇게 무서운 일이라니. 지금은 조직검사를 앞두고 있다. 어쩌면 암일지도. 아니면 그냥 물혹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하루하루 생각이 깊어진다. 이 많은 분량의 글들도 다 그런 시간 속에서 왔다. 공부? 이전보다 좀 더 똑똑해졌을지는 몰라도 내게 그리 의미 있지는 않다. 그저 지난 시간들이 아깝기만 하다.
꽃을 배우지 못했던 것, 주얼리 디자인을 배우지 못했던 것, 국문학을 전공하지 않았던 것, 아버지 등쌀에 기자직을 그만둔 것, 결혼하고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느라 몇 년을 낭비했던 것. 그리고 아버지의 기준에 맞추기 위해 나에 대해 고민할 시간을 많이 가지지 못했던 것. 그럴 용기를 못 내본 것. 내 행복을 몰라본 것.
내가 오늘 아이에게 더 재미난 놀잇감과, 체험과, 멋진 경험을 주고 싶었던 것처럼 아버지도 내게 그랬을 것이다. 내가 더 좋은 인생을 살도록 안내해 주고 싶었을 것이다. 여기 더 좋은 게 있으니 이걸 보라고. 네가 보는 그것보다 이게 더 좋다고 말이다.
아이는 내가 제안했던 수많은 거창한 코스보다, 친구와 함께하는 강아지 산책을 선택했다. 그리고 아이는 마음 가득 기뻐했다. 아이가 말하는 '최고'가 이거라면 나도 이게 최고다. 내가 아이를 사랑하는 방법은 그렇다. 이 방법이 나중에 아이가 컸을 때 상처가 되지 않으면 좋겠다. 내가 고집하는 사랑법이 혹시 아이에게 상처로 남지는 않을지 엄마로서 그것이 늘 고민이다.
아이를 타고난대로 살게 해주고 싶다. 규칙을 어기거나, 나쁜 행동만 아니라면 해보고 싶은 대로 하게 해주고 싶다. 하고 싶은 일이 엉뚱하더라도 정말 해볼 수 있게 같이 고민해주고 싶다. 혹여 내가 돈이 부족하다면 관심사를 잃지 않도록 대화라도 나누고 싶다. 그러다 좋은 기회가 오면 잡을 수 있도록.
남편은 내가 야채가게 알바라도 할까 고민할 때 차라리 글을 쓰라고 했다. 그는 재능과 비교하는 저울질 없이 내 타고난 본성을 알아봐 준다. 강아지 산책에 재능이 필요한가. 그저 강아지는 마음껏 배변하고 달리고 냄새 맡을 뿐. 나도 그냥 그런 것이다.
블로그도 그래서 시작하게 됐다. 수익성 블로그를 하려고 했는데 그것보다는 그냥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 돼버렸다. 활력이 돌기 시작했다. 원래는 돈 때문이었는데 블로그가 본질에서 자꾸 멀어진다.
그런데, 블로그를 시작한지 얼마 안 돼서 건강에 좋지 않은 소식이 생겼고, 마음도 점점 달라진다. 처음엔 그냥 좋아하게 됐는데 이제는 아이들을 위해 하게 된다. 혹시 내가 아파서 건강한 모습을 잃게 되면 엄마가 건강하고 분주하게 활기차게 일하던 모습이 여기 있으니 보고싶으면 보라고.
그래서 용기를 냈다. 여기에 민망한 우리집 사진이 올라오는 이유, 특출날 것 없는 요리들을 올리는 이유, 화장기 없이 꾸미지 않은 내 얼굴이 살짝살짝 비치는 이유, 굳이 영상을 찍어 올리는 이유, 그 속에서 말을 하는 이유는 그래서다.
블로그로 돈 버는 건 저 멀리 물 건너갔다. 애드센스 승인도 안 나고, 이글 저글 올리는 잡블로그가 되어간다. 그래도 뭐 어쩔 수 없지. 좋은 마음을 가로막을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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