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하루꾼의 오늘/일상다반사: 따뜻한 오늘

[아들키우기] 아들은 늘 똑같은데, 엄마만 다른가봐

by 하루꾼 2022. 5. 25.
반응형

 

아들키우기 참 어렵다. 

 

20대 때 교회에 학을 떼고 떠났는데, 아들 키우다보니 어느새 내가 다시 내 발로 교회에 다니고 있었다. 아, 물론 지금은 안 다니고 있다. 처음엔 좋았는데 이젠 그 좋던 설교도 약발이 떨어졌다. 절대 목사님 탓은 아니다. 내가 그 정도로 요즘 지쳤을 뿐.

 

그냥 나가서 한 시간 산책하고 들어오거나, 친한 지인을 만나서 커피나 한 잔 하고 들어오는 게 후련할 때가 많다.

 

어린이집 하원 후, 밖에서 매일 2시간 가까이 이렇게 놀다가 집에 들어온다. 일일피크닉 준비물은 돗자리, 물, 간식, 잠자리채, 킥보드, 물티슈 등

 

그렇다고 아이들이 나빠서 내가 힘들다는 이야긴 아니다. 평범한 장난꾸러기에 에너지 넘치는 건강한 남자 아이일 뿐. 그냥 내가 남자 아이들 에너지를 다 채워주기에 그릇이 부족한 엄마라서일거다.

 

아들들은 늘 똑같다. 언제나 적당히 엄마 말을 잘 듣지 않고, 공부를 싫어하고, 약간의 말썽을 달고 산다. 오히려 아들들이 너무 조용하고 얌전하다면 뭔가 이상하다는 신호다.

 

어디가 아프거나, 친구와 다퉈서 웬일로 놀이터에 나가지 않고 조용히 집에만 있거나, 또는 같이 게임하지 않는 것일지도 모른다. 문제집을 풀어놓은 게 웬일로 100점을 맞았더라도 한 번쯤은 의심해볼 만한 일이다. '혹시 나 몰래 해답지를 본 건 아닐까?' 나는 그럴 때 한 문제 정도 풀이 과정을 물어보곤 한다.

 

우리집 아들들도 마찬가지다. 내 말은 한 번에 듣는 법이 없고, 숙제 하기를 싫어하고, 말썽을 부릴 때마다 주문처럼 생각한다. '그럴 줄 알았어'. 그 말이 '니가 그럼 그렇지'라고 말하고 싶은 건 절대 아니다.

 

그냥, '엄마는 이 정도까지 마음의 준비를 했어' 라는 뜻이다. 그런 마음의 대비가 되어 있으면 아들들이 뭔 짓을 해도 감정적으로 끓어오르지 않는다. 그냥 저질러 놓은 문제만 똑바로 보고 어떻게 하면 좋을지 이야기 나누고 다음에 잘 할거라 믿어주며 기다려보면 끝이다. 

 

그래서 우리집 1호는 "엄마는 멘탈 갑이잖아~ 뭘 이 정도로 엄마가 놀라겠어? 이 정도로는 엄마 꿈쩍도 안 하면서~"라고 하곤 한다. 아이가 나를 그렇게 강한 엄마로 본다는 게 위로가 될 때가 많다. 네가 날 그렇게 봐 준다면 난 그런 사람이 되기 위해 더 열심히 노력할 거니까.

 

사실, 아이가 보는 것처럼 나는 그렇게 강하지 않다. 때로는 그 사실을 들킬까봐 조마조마하다. 오늘이 그랬다.

 

어제는 아이가 학교 간 사이에 입원한 남편으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친정에서 키우던 강아지가 무지개 다리를 건넜다는 이야기였다. 친정 부모님이 항암치료를 하는 동안 잠깐 시댁에 맡겼는데, 잠깐 맡긴 그 사이에 노견이던 강아지가 세상을 떠났다. 야생 동물에게 물려서 손쓸 틈도 없이 그렇게 허망하게 가버렸다.

 

오늘은 친정 엄마에게 전화 한 통을 받았다. 다시 암 덩어리로 의심되는 것들이 보인다는 이야기였다. 불과 3개월 전이었다. 그 힘든 항암치료를 이기고 친정 엄마 몸 속에 암 덩어리가 모두 사라져서 잘 됐다는 기쁜 소식을 들은 게 다 거짓말 같았다.

 

내가 슬퍼할 새도 없이 엄마는 말을 이어갔다. 이번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니 여행을 같이 떠나자고. 그런데 평생 엄마를 괴롭히던 사람과 함께 가자고 하신다. 내게 운전을 부탁하셨다. 나는 너무 놀라서 그건 안 될 것 같다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엄마랑 여행을 가고 싶었지만, 그 사람 때문에 너무 놀라서 당장은 거절해야 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기분이 이상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두 아프다. 남편도, 친정 부모님도. 그리고 강아지가 갑자기 떠났다. 나한테 과연 이들을 지킬 힘이나 있는걸까.

 

내가 조금만 더 건강한 음식을 해 먹이고 잘 챙겨줬으면 지금 남편이 아프지 않을지도 모르는데. 맞벌이 한다고 바빠서 친정 부모님 아픈 것도 빨리 못 알아챘다. 좀 더 빨리 병원에 모시고 갔다면 지금처럼 이러진 않을텐데. 시댁에 강아지를 맡기지 않았다면 지금쯤 우리 집에서 자고 있을텐데. 내가 더 힘들어지는 걸 참지 못해서 주변을 아프게 하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그런 무거운 마음을 안고 있어도 어린 아들들은 그런 내 사정은 안중에도 없다. 첫째는 어김없이 오늘도 숙제를 어떻게 하면 조금만 할까 궁리하기 바쁘고, 둘째는 늘 그렇듯 별 것도 아닌 일에 짜증내고 떼쓰기 바빴다. 이런 날은 좀 쉬고 싶기도 한데. 오늘은 영 날카롭고 웃음이 나오지 않는다. 

 

그래도 나는 오늘도 놀이터에 돗자리를 펴고, 준비해 온 찐 옥수수를 꺼내고, 물병을 꺼내 둔다. 매일 이렇게 아이와 아이 친구들과 한 두 시간씩 놀다 들어간다. 매일이 피크닉인 게 아이를 행복하게 해주는 것 같아서 쉬고 싶어도 쉬어지지가 않는 것 같다.

 

아이는 그런 내 맘을 아는지 모르는지. 자동차 창문 바로바로 안 닫는다고 짜증. 킥보드 말고 차 타고 간다고 짜증. 하루종일 화내고 짜증내고. 결국, 집에 갈 때 마저도 킥보드 때문에 내 얼굴을 때리고 꼬집기까지 했다. 나도 터져버렸다.

 

평소라면 정신 똑바로 차리고 멘탈갑 엄마의 모습대로 흔들림 없이 아이를 대했을텐데. 오늘은 그러지 못했다. 아이의 짜증내는 말투를 고치기 위해서 노력중이었는데 내가 똑같이 화를 내버렸다. 좋은 본보기를 보여줬어야 했는데 무너져버렸다. 아이는 늘 똑같은 모습인데 엄마인 나만 달랐다.

 

'화'라는 건 필시 '나약함'의 다른 말일 것이다. 내가 약해지면 화가 튀어 나오는 것 같다.

 

저녁에 병원에 있던 남편에게 전화가 왔다. 아이들이 오늘 하루 너무나 힘들게 했다고 투덜댔다. 큰 애는 매번 해야하는 숙제도 또 안 해놓고, 작은 애는 하루종일 나한테 짜증만 냈다고. 매일 밖에서 놀아주는 거 힘들어 죽겠는건 당신만 아나 보다고 했다. 남편에게라도 털어놓으니 좀 나아지는 것 같았다.

 

그는 내게 아이들이 혹시 강아지 소식을 알고 있느냐고 조심스레 물었다. 엄마가 지금 어떤 마음으로 밖에 나가 놀아주는 건지 알아야 할 거 아니냐고 했다. 나는 차마 말하지 못했다고 했다. 강아지가 무지개 다리 건넌 건 나에게도 너무 충격이었으니까. 

 

하루라도 더 커서 알아. 사랑하는 사람이 아프고, 걱정되는 마음은 하루라도 늦게 알아. 너는 그냥 매일매일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나 외치면서 밝게 자라. 엄마가 매일 돗자리 가지고 밖에 나가는건 그래서야. 나중에 알아도 늦지 않아 너는 너무 어려. 서른중반 넘은 엄마도 이렇게 힘들어.

 

그런데 큰 애는 내 바람과는 좀 다른 시간을 보내는 것 같다.

 

오늘 화냈던 게 미안해서 저녁 먹으면서 마음 다잡고 말했다.

 

"엄마가 좀 더 노력할게. 우리 가족 서로 도우며 살자. 가족끼리 서로 돕는다는 건 너희들이 엄마의 집안일을 대신 해주거나 아빠 대신 돈을 벌어야 한다거나 그런 게 아니야. 그냥 각자의 위치에서 자기가 할 일을 최선을 다해서 하는 게 가장 잘 도와주는 거야. 그러니 1호도 숙제 열심히 해서 엄마 조금만 도와줘"

 

큰애가 말했다.

 

"아니. 엄마, 여기서 더 노력하지마. 엄마는 지금 최선을 다하고 있잖아. 오늘 낮에도 엄마 힘들었던 거 알아. 다 들었어. 그런데도 이렇게 우리 저녁 챙겨주고 옥수수 간식까지 챙겨주고 나 공부도 잘 봐줬잖아. 이거보다 더 잘하려고? 오히려 내가 숙제 잘 했으면 되는건데 내 노력을 못한거지. 내가 오히려 미안해"

 

나보고 멘탈갑이라고 했던 큰애인데. 어쩌면 다 알면서 나 위로해주려고 멘탈갑이라고 한 건 아닌지. 이미 내 나약한 모습을 너무 많이 들킨건 아닌지. 복사 붙여넣기할 수 있다면 그러고 싶다. 멘탈갑일때만 복사해서 붙여넣고 싶다. 매일매일.

반응형

댓글